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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Note

드디어 문을 하나 열었을 때

매일매일 한결같이 2023. 10. 7. 04:22

2023년 2월 어찌저찌 학부를 졸업하게 됐다. 졸업하고 난 뒤로 쉬고싶다는 생각이 되게 강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맘을 먹고서 그렇게 4월까지 쉬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알고는 도피하고 싶었던 욕구가 크지 않았나 싶다.

 

와중에 깃헙 블로그도 만들고 공부했던 내용 일부를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공부하는 내용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습관을 들여야 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ML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선형대수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꼈는지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크게 동기부여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공부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CJ대한통운에서 주최하는 미래기술챌린지 공모전을 보고는 굉장한 흥미가 생겼다. 총 4개의 과제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데, '라우팅 알고리즘 설계' 과제가 나의 도전 의욕을 불태웠다. 무작정 해보자 싶어 팀원 모집 공고문을 올려 팀원도 꾸려서 잘 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내 의지만큼 팀원들이 도와주지 못하고 중간에 하차했다. 어자피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혼자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가 강했어서 크게 동요하지 않고 진행했다. 결과적으로는 구현에 실패했다. 혼자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쉬웠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대신 얻는 것도 있었다. 라우팅 모델 관련 서칭하는 과정에서 GNN을 접했고 나에게 매우 흥미로운 모델로 다가왔다. ML을 더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던 나로서는 '이거다!' 싶었다. 부랴부랴 관련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튜토리얼도 따라해보았다. 하지만 당장 내년 1학기 대학원 입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컨택에 온 집중을 쏟았다.

 

컨택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깨지고 붙이고를 반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정말 부족하구나, 정말 부족하구나... 하지만 무작정 이 곳 저 곳 메일을 넣었다. 그래도 인터뷰를 하자고 하는 교수님이 계셔서 일단 감사했다. 하지만, 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교수님의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준비했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말아먹었다. 돌이켜보면 처음이라 떨리고 준비가 미흡한 건 당연할 수는 있다. 대신에 깨달은 건 많았다. 내가 공부를 겉핧기식으로 해왔구나, 앞으로 기본적인 개념부터 탄탄하게 공부를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 정리를 하고 자대의 교수님에게 컨택했다. 면접을 보러 직접 오라고 답이 왔다. 다시 면접 준비를 하는데, 이전 면접에서 내가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를 알고 대비하니 한 층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면접을 보는데, 처음에 실원들과의 면접에서 비교적 대답을 잘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는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교수님이 나오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전공과 관련된 이론적인 질문은 하지 않으셨다. 이전에 어떤 것들을 했는지, 관심 연구 분야, 연구실 소개 등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주셨다. 대화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일단 교수님이 정말 좋으신 분인 것 같아 좋았다. 연구실을 잘 꾸리고 싶어하시는 욕심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실원이 막상 되면 다르지 않을까싶긴 하지만 어쨌든 첫 느낌이 좋았고, 나도 여태껏 사람 만날 만큼 만나봤는데 크게 잘못 본 건 아닐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비공식(?)적으로 실원이 되었다. 그렇다고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연구실원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요새 드라마 '미생'을 다시 정주행하고 있는데,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도 지방대 출신으로 취업하기 정말 힘들었거든. 그러다가 이 회사에 합격했는데, 그냥 문을 하나 연 기분이더라고. 우리는 어쩌면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어."

 

드라마 주인공의 상사로 나온 모 대리가 한 말인데, 이 사람의 감정이 지금의 내 감정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또 열어야 할 문이 너무나 많음을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때문에, 추후에 교수님과 1대1 정식 면담을 하게 되면 내가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연구실 생활을 해나갈지를 명확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 때 어떤 말씀을 드릴지 생각해봤는데, 지금은 다음과 같다.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 스스로가 연구를 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고 유의미한 실적을 내기까지 교수님이 보셨을 때 답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는 상황 자체가 싫기 때문에, 최대한 매사에 열심히 할 것입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몰랐다면, 지금은 좋은 교수님을 만나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 스스로도 생각 정리를 많이 했구요. 앞으로 교수님이 알려주신 방향대로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믿고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교수님께 말을 안 하면 제가 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을 것 같아 먼저 말씀드리는 겁니다.'

 

교수님께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렸으니 앞으로 한 달 동안 연구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된다. 면접 본 다음 날 자취방을 알아보고 가계약을 하고왔다. 정말 잘 한 것 같다. 연구실 출근 전까지 자잘구리한 것들을 최대한 정리하면서 좀 더 여유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시간을 앞으로 가지지 않을까 싶다.

 

여태 나를 방해하던 것들이 이제 사라졌다. 그렇다고 방해하던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만큼 나를 성장시켰으니까. 앞으로 나를 방해할 것들이 아주 많겠지만, 지금은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때이다. 요새 내가 많이 하는 말이 있는데, 이 말로 글을 마무리해보자.

 

"인생은 깨지고 붙이고의 반복이다."